불탄 숲에서 만난 기적의 인연
김숙경
오월 초 나는 '숲앤휴'에서 진행한 울진 산불 피해 지역 나무 심기 1박 2일 행사에 참석했다.
산불이 휩쓸고 간 자리는 생각보다 훨씬 처참했다. 검게 그을린 산등성이와 앙상하게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니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그 자리에서 불길 속에 스러져 갔을 나무들의 고통을 생각하니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 일행 40여 명은 각자 백합 나무 두 구루씩 심었다. 작은 묘목 하나하나에 이름표를 달며,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잘 자라다오."
십 년 후 다시 이곳을 찾아 내가 심은 백합 나무를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까지 내가 건강하게 걸을 수 있다면, 꼭 다시 와서 이 나무들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고 싶다. 그것은 단순히 나무의 성장을 보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의 시간이 얼마나 아름답게 이어졌는지 확인하는 일이 될 것만 같다.
그런데 이번 행사에서 나는 뜻밖의 더 큰 선물을 받았다. 행사 둘째 날, 진행을 맡은 이사장이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S여고 선생님 아니셨는지요"
나는 놀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며 자신이 바로 내가 담임을 맡았던 여고 2학년 시절 제자라고 했다.
순간, 나는 말을 잃었다
어머나, 어찌 이런 일이...
그녀 이름은 이석재
듣고 보니 낮설지 않았다. 얼굴도 어딘가 익숙했다. 반세기, 무려 50년 만의 기적 같은 만남이었다.
까마득한 세월이 한순간에 걷히며, 눈앞에 열일곱 살 소녀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너무도 감격스러워 나는 그를 꼭 껴안아 주었다.
석재 이사장은 함께한 일행들에게 "제가 반세기 만에 담임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하고 인사했고, 모두가 우렁 찬 박수로 축하해 주었다. 그 박수 소리를 들으며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북받쳐 올랐다.
교직을 떠난 뒤 캐나다로 이민 간 지 28년, 한국에 잠시 나와 우연히 참석한 나무 심기 행사에서 이런 기적 같은 재회를 하게 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좋은 일을 하러 갔더니 하늘이 큰 선물을 내려준 것만 같았다.
더 놀라운 일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
스승의 날 5월 15일, 석재와 여고 2학년 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내 숙소까지 차를 몰고 찾아왔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여섯 친구가 꾸준히 만나고 있다니, 그 우정 또한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웠다.
그들은 저녁 식사를 정성껏 대접해 주고, 아름다운 소녀 모습의 꽃다발을 건네고, 홍삼액과 들기름 된장 막장까지 한아름 안겨 주었다. 그 따뜻한 정성에 나는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1977년 졸업 앨범과 경주 수학여행 사진도 가져왔다. 석재가 사진 한 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생님 팔을 잡고 있는 아이가 바로 저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지금의 모습 속에서 문득 소녀 시절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황경자, 김희묵, 김낙희, 허경숙, 김성미....
이름 하나하나가 오래된 기억의 서랍을 열었다. 미국에서 세무사로 일하고 있다는 허경숙 소식도, 암 수술을 앞두고 참석하지 못한 김성미의 안타까운 소식도 들었다. 나는 그녀의 빠른 쾌유을 진심으로 빌었다. 꼭 완쾌하여 만날 수 있기를...
내 나이 일흔 아홉, 제자들은 예순 아홉.
열 살의 세월 차가 있지만, 그날 우리 사이에는 나이가 없었다. 세월은 소녀들을 할머니로 만들었어도, 담임 선생님 앞에 선 그들은 여전히 순수한 여고생들이었다.
깔깔 웃으며 옛 이야기를 쏟아내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어느새 20대 무렵의 풋풋한 교사로 돌아가 있었다.
불탄 숲에 심은 작은 백합 나무처럼, 사람의 인연도 세월 속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가 보다. 울진에서 심은 그 나무들이 십 년 후 푸른 숲이 되어 있듯, 우리 사제의 인연도 반세기를 지나 다시 푸르게 살아났다.
그날은 내게, 오래 건강히 살아왔기에 받을 수 있었던 참으로 귀한 선물이었다.
<2026년 5월 16일 >